사막엔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러나 어린 괴물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그란디아 드라케 르귀네스테(Grandia Drakke Le Guinaste). 하얀 사막의 위대한 용이라는 의미의, 광활하고 이름 없는 사막의 지배자였다.
어느 날 그는 사막을 지나는 대상인의 종소리를 듣고 생각했다.
'아! 저들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들은 바람과 같이 이곳저곳을 속박 없이 돌아다닌다. 또한 얼마나 용감한가? 그들은 이 뜨거운 사막과 험난한 산맥을 건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얼마나 지혜로운가! 광할한 바다며 산이며 들이며 숲속 곳곳까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지않은가! 그에 비하면 나는 그저 이 사막에 틀어박혀 잘난 체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가!
아아, 저들이 부럽다. 나도 저들과 함께 하고 싶다. 책으로만 읽은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태양과 모험으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리하여 하얀 사막의 지배자, 위대한 용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결심하자마자 곧바로 날아올라, 대상인들의 앞을 막아섰다.
"용감한 대상인들아. 내 말을 들어다오. 나는 이 하얀 사막의 지배자인 위대한 용이며 오늘 막 여행을 결심한 참이다. 그러나 이것이 초행인 차, 나의 길잡이로서 너희가 함께하길 바라니 나를 너희의 여행에 동행시켜다오."
그러나 거대한 용이 내려앉는 모습을 본 상인들은 겁에 질려, 위대한 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다. 용은 같은 일을 몇차례 더 시도해보았으나 결과는 같았다.
마침내 용은 너무 화가 나고 절망하여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길동무를 찾아보고, 그 마저도 용을 저버린다면 모든 인간을 절멸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방법을 바꾸어 인간을 협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하얀 터번을 두르고 허리에는 빛나는 칼을 찬 여행자 한 명이 한 마리 낙타와 함께 사막을 건너는 것을 목격하고 불을 뿜으며 소리 질렀다.
"이 조그마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아! 누가 감히 나의 허락 없이 내 땅을 넘어가느냐! 목숨이 아깝다면 바닥에 몸을 던지고 용서를 빌어라. 그렇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불길이 솟아올라 구름을 불태우자, 여행자의 낙타가 놀라 달아났다. 여행자는 놀라 자빠졌으나, 이내 시뻘건 얼굴로 벌떡 일어나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이 덩치만 큰 썩을 놈의 자식아! 누가 감히 나의 낙타를 쫓아내느냐! 내가 디디고 서고 누워 자는 곳이 바로 내 땅인데 어디서 행패를 부리느냐!"
용은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반응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는 내가 두렵지 않느냐?"
"덩치만 큰 녀석이 도적질을 하는게 뭐가 무섭단 말이냐?"
"너는 목숨이 아깝지 않느냐?"
"너와 같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를 두려워하지 않느냐?"
"너는 몸통보다 머리통이 작아서 머리가 나쁜 모양이구나! 내가 살려줘도 내 전 재산을 가진 낙타가 사라져 죽게 생겼는데 그게 할 말이냐! 그딴 멍청한 물음뿐이라면 당장 꺼져라!"
여행자는 화가 나서 내뱉고는 낙타가 달려간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잠깐! 잠시만 기다려라!"
용은 당황해서 긴 목으로 여행자를 가로막았다. 여행자는 칼을 뽑아들고 외쳤다.
"당장 비키지 않으면 모가지를 뽑아버리겠다!"
"기다려라. 내가 잘못했다. 낙타 일백 마리를 살 수 있는 보석을 주마."
여행자는 용의 말에 조금 누그러뜨렸으나, 퉁명스럽게 말했다.
"물이 없어서 죽게 생겼는데 그깟 보석이 무슨 소용이냐."
"내가 낙타를 찾는 것을 도와주마."
"이 넓은 사막 어디에서 어떻게 낙타를 찾는 단 말이냐?'
용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내가 너를 태우고 날면 눈 깜빡할 사이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다."
그리하여 여행자는 용을 타고 낙타를 찾아 날았다. 용이 날개를 펼쳤다. 강철의 날개가 우아하게 바람을 가를 때 마다 아름다운 비늘에 수놓아진 푸른 불꽃이 불타오르듯 살아 움직였다. 용의 날카로운 눈이 구름을 뚫고 낙타를 찾았다. 그러나 여행자의 낙타는 본디 허락된 이상으로 달려, 절망한 상태였다. 여행자는 낙타에게 달려가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낙타야, 낙타야. 네가 주인을 잘못만나 죽었구나!"
용은 너무 미안하여 볼멘소리로 말했다.
"너무 울지 마라. 내가 낙타 일백을 살 수 있는 보석을 더 주마."
"이 녀석은 내가 사막을 누비는 동안 길동무가 되어주었고 세찬 바람이 불 때 벽이 되어주었고 밤이건 낮이건 위험이 닥치던 나와 함께 해주었다. 이 녀석과 나는 친구이며 형제와 같다. 내 형제가 죽었는데 낙타 일백마리며 보석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여행자가 어찌나 슬프게 울었던지, 용은 여행자의 사돈의 팔촌의 십육촌의 이웃사촌까지 몰살시킨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용은 한참 얼굴을 들지 못하고 고개 숙이고 있었다.
여행자는 한참을 울고 코까지 풀고 나서야 일어났다. 그는 낙타의 시체에서 간단히 물건을 챙기더니 용에게 말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나는 그란디아 드라케 르귀네스테라고 불리운다."
"이름이 길어 부르기 힘드니, 앞으로 넌 르귄(Le Guin)이다."
여행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성금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가자 이 녀석아."
용은 어리둥절하여 여행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행자는 퉁퉁 부은 눈으로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까 네가 내 낙타를 죽였으니, 이젠 네가 내 낙타가 되어야 할 것 아니냐!"
그리하여 괴물은 사막을 뒤로하고 모험으로 가득 찬 바다와 새로운 태양을 향해 떠났다. 그것이, 여행자 뇰세헨게츠(Neyorsh'ehenkexch)와 그란디아 드라케 르귀네스테의 첫 만남이이었다. 두 사람은 곧 친구가 되어 산과 바다와 구름과 하늘을 누볐다. 두 사람이 나타나면 해적선도 깃발을 내렸으며 온갖 왕들도 고개를 숙였으며 모든 용감한 기사들도 검을 떨구었다. 그란디아 드라케 르귀네스테는 만물의 영장이었으며 하늘의 제왕이었으며 땅의 지배자이자 바다의 맹수였다. 그의 불꽃은 바다도 끓였고 그의 비늘은 어떤 무구도 꿰뚫지 못했으며 그의 분노는 신조차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런 그 조차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여행자 뇰세헨게츠는 점차 늙어 기력이 쇠약해졌다. 마침내 그가 타지에서 최후를 맞게 되었을 때, 언제나 그랬듯, 뇰세헨게츠의 옆에는 그란디아 드라케 르귀네스테가 있었다. 뇰세헨게츠는 모든 지인들에게 인사를 건낸 후 그란디아 드라케 르귀네스테와 단 둘이 있었다. 용은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을 떨어뜨리며 슬퍼했다. 뇰세헨게츠는 조용히 누워 죽음을 기다리다가, 문득 잊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르귄. 나의 친구여, 자네가 이전에 낙타 죽인일로 이백 마리의 낙타를 빚진 적이 있었지."
"그런 일도 있었지."
용은 수심이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네가 온갖 부귀와 영화를 줄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있네, 그러나 나는 이백 마리의 낙타 대신 자네와의 추억을 가져가겠네."
"……."
"기억하게, 우리사이에 더 이상의 빚은 없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기억은 자네의 생이 끝날 때까지 살아 숨 쉬고 있을 걸세."
"알겠네. 나는 죽지 않으니 우리의 추억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영원할 걸세."
"자네가 나에게 영생을 선물하는 군."
여행자가 껄껄 웃었다.
"이제 작별할 시간이군. 앞으로는 자네의 기억 속에 살아있겠네."
"잘 가게 친구. 세상이 끝날 때 보세."
여행자가 죽자, 하얀 사막의 지배자, 위대한 용은 일백 하고도 아흔 아흐레를 구슬피 울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를 가리기 위해 자신의 영토 중앙의 도시에 친우의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바로 영원의 도시 뇰세헨게츠의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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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용, 뇰세헨게츠는 그 자신 만큼이나 오래된 책을 덮었다. 분명 생명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지면 위로 낙타의 무리가 지나고 용감한 여행자가 구름막이 산맥을 넘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 정체된 고요한 죽음의 도시에도 생명이 북적였던 것은 사실이다…….
뇰세헨게츠가 그의 이름을 딴 도시를 기억하고 있을 때, 한 소녀의 목소리가 그의 사색을 방해했다.
"뇰센-!"
뇰세헨게츠는 여느 아버지가 그렇듯 가슴이 한없는 사랑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본디 남자라는 생물이 대개 그렇듯, 그리고 그 자신이 언제나 그래왔기 때문에, 소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숨기고 심드렁하게 건성으로 대답했다.
「왜 그러냐 렌시. 오늘도 뭔가 색다른 사고라도 친거니?」